북조선은 세계에서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58개국 중 하나이며, 2012년에 사형을 실제 집행한 21개국 중 하나이다.

사형은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러나 북조선에서의 사형제도는 지난 수십년간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광범위하고 다르게 운영되어 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1997년 12월 이후로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사형 폐지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내부 증언과 소수의 신뢰할만한 보고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북한은 수천건 이상의 사형집행이 있었고,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많은 수가 집행됐다.

또한 모든 사형 집행은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표면적 사법절차를 통해 진행된다.

재판은 대개 이뤄지지 않으며, 특히 북조선의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사형은 자의적으로 집행된다. 공개처형, 비밀처형은 경범죄 및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배경

한국/조선전쟁 (1950-1953)은 북조선이 통일을 하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38선 대신 휴전선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조선반도는 오늘날 남쪽의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나뉘어 있다. 두 나라는 1991년에서야 유엔 회원국이 되었으며 북조선은 그때까지 남한과 북조선 유엔 동시가입에 반대해왔다.

조선로동당은 1949년 6월 30일 창당된 이후 유일한 지배정당으로 남아있다. 그 지도이념은 사회주의,2민족주의, 주체사상, 김일성, 김정일주의이며 지금은 김정은주의이다.

북조선의 연좌제는 ‘반역자’로 간주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3대 가족까지 처벌하는 제도로써 1972년 김일성에 의해 처음 제도화됐다.

1990년대 북조선은 에너지난과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을 겪었으며, 수백만명이 아사했다. 암시장이 등장했고, 김정일은 인민들 사이에서 공포심을 조장하고 반정부 운동을 막기 위해 “총소리가 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북조선의 인권상황

유엔은 다음과 같은 인권침해의 사례와 경향을 지적했다:►고문 및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벌이나 대우, 특히 구금시설의 상태;

처벌의 일종으로써의 자의적 구금 및 법치주의의 부재;►강제 실종 (외국인 납치 포함);7►사상, 양심, 종교, 언론, 표현,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의 극단적 제한

식량권 침해;►이동의 자유와 탈북자에 대한 탄압;8►여성, 아동, 탈북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탈북 여성에 대한 강제낙태와 영아살해 등 생명권 침해.

북조선의 정치범 수용소 (관리소)는 구소련의 강제수용소 (gulag)에 비유되는 특이한 구금시설이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기가 왜 끌려왔는지 그 이유도 모른채, 연좌제 등의 이유로 갇혀있다. 북조선 정권은 이러한 정치범수용소의 존재자체를 부인한다.

위에 언급된 인권침해들은, 생명권 침해를 포함해, 수용소에서 자행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주기적인 처형, 고문, 강제노동, 건강권 침해 등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죽을 때까지 수용소에 갇히며, 변호사 접견이나 재판은 허가되지 않는다.

수용소내의 심각한 인권침해와 수용소의 존재 자체는 수감자들의 노예적 처우와 더불어 로마협약 7조 1항의 c.노예제, e.감금 또는 국제법의 기본규범이 정하는 신체적 자유의 침해에 해당하며 따라서 반인도 범죄에 해당한다. 그는 또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의 비인간적 처우와 상황은 반인도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북조선인권특별보고관은 북조선 정부에 서한을 보내 “수용소 내의 강제노동과 식량, 주택, 의복, 위생, 의료시설 등 생필품에 대한 제한적 접근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북조선은 1981년 9월 14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ICCPR)에 가입했다.13ICCPR은 생명권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협약 제6조에 따르면

1.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갖는다. 이 권리는 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누구도 그 생명을 자의적으로 빼앗을 수 없다. 2. 사형제도를 폐지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형 집행이 가장 심각한 범죄에 한해서 집행되어야 한다. 이 처벌은 법정에서 최종 선고에 따라 집행되어야 한다. 5. 사형은 18세 미만에게는 집행되어서는 안되며 임산부에게 집행되어서도 안 된다. 이 협약의 가입국은 본 조항을 이유로 사형제의 폐지를 연기해서는 안 된다”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의 공개처형 예-증인 6은 30대 중반 여성 (평양출신)의 공개처형을 증언했다. 사형수는 시장에 세워진 사형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반죽음이 되어 있었고, 고문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과 친구가 연필을 갖고 싸움을 하다가 아들이 그 친구를 밀어 실수로 죽였고, 여성은 그 친구의 시체를 자기 마당에 묻었다.

그러나 당시는 고난의 행군 기간으로 기근이 매우 심해, 여성은 시체의 팔 한쪽을 잘라 삶아 먹었고, 보안원들이 시체를 발견하면서 사건이 드러난 것이었다.

피고는 친구 집에 술 한잔 하러 갔다가 면도칼을 하나 빌려갔다고 한다. 피고와 친구는 이후 장마당에 나갔는데, 보위부 간부 아들인 다른 친구를 만났다. 들 사이에 서로 시비가 붙었는데, 피고가 면도칼로 간부 아들을 찔러 상처를 입혔다. 그는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됐으나 피고는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피고의 아버지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처형된 사실이 알려졌고, 피고의 성분이 나쁜 것으로 밝혀지자, 피고가 앙심을 갖고 보위부 간부 아들을 찌른 것으로 둔갑됐다.사형집행일에, 담당관이 선고를 읽고 마지막 할 말을 물었다. 사형수는 자신이 무죄이며, 친구를 찌른 것은 사고였다고 말했다. 그는 입에 재갈이 물리지는 않았으나, 말할 힘이 없어 보였다. 사형당한 시체는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북조선 형법에 따르면 변호사들은 공무원으로써 당의 정책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변호사들은 인민들을 일깨우고 재판 절차에 있어서 당의 정책을 정당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변호사들의 임무는 “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범죄자의 의도를 밝혀 범죄자가 조국과 인민 앞에 사죄하도록 하는 것”이다. 북조선의 변호사는 피고의 권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북조선법은 기소로부터 피고를 보호한다는 개념이 없으며 법원의 권한을 통해 국가의 이념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신발공장 지배인은 외국 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았고, 인민반장은 중국에 몰래 갔다왔다는 이유로, ‘비자금’ 조성 혐의가 적용됐다. 보위부원에 대한 선고를 읽을 때에는 ‘일본’과 관련된 혐의가 있었던 것으로 증인은 기억했다. 이들은 항소권도 없이 처형당했다. 사형수는 입에 재갈이 물렸고, 기관총으로 총살 당했다. 이들을 죽이는데 총알은 한발로 족했다.

일부 보고에 따르면 공개처형 전에 다음과 같은 절차가 진행된다:“공화국 국기가 뒤에 걸리고, 검사와 도 보위부장, 도 보안부장, 재판관 등이 자리에 앉는다. 재판은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재판관이 선고를 한다. 공개처형은 시범을 보이기 위해 이뤄진다. 증인 1,3,5,7,9,10,12는 10세 이하의 어린이들도 이러한 시범을 보기 위해 처형장에 동원된다고 말했다. 보안원들은 사형대 근처 탁자에 앉아, 판사처럼, 선고를 하고 피고에게 “당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처형 전에 사형수는 마지막 할말을 하는데, “당의 사랑을 받았지만, 나는 은혜를 저버렸다”는 등의 참회를 강요받는다고 한다.

1997년 인육을 판 혐의로 체포된 한 남성이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 시장에서 공개총살 당한 것에 대해 증언했다. 같은 해 여름, 평성의 하차동에서 증인 2는 26세 남성이 살인혐의로, 두 남성이 강도, 한 여성이 매춘으로 공개총살당한 것에 대해 증언했다. 한 주 뒤, 증인 2는 평안남도 평성시 봉악에서 두 남성이 살인 혐의로 총살되는 것을 보았다.

2000년 여름에는 제대군인 한 명이 여성과 그 딸을 살해한 혐의로 공개총살됐다. 이 증인은 사형수가 평양시 락랑구역 통일거리 승리3동에 위치한 재일교포인 친구의 집에 들어가 강도짓을 하기 위해 그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증인 3은 2003년 한 30대 남성이 전선을 훔친 혐의로 총살당하는 것을 지켜봤다. 증인 3은 직장의 당 비서를 통해 총살장에 나가도록 명령받았다고 말했다. 공개총살은 평안남도 순천시에서 일어났다.

증인 9는 2006년 인신매매와 밀수 혐의로 한 여성이 경기장에서 공개처형당했다고 증언했다. 증인 9는 또 그 후 한 남성이 자기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전선을 훔쳤다가 처형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에서 공개총살을 당했다

증인 2는 1997년 9월 신의주시 백사리 근처에서 폭력조직에 가입한 남성 여섯 명이 공개총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들은 신의주-평양 도로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적발됐다고 한다.

같은 달, 증인 2는 26세 남성이 신의주와 남신의주를 연결하는 전철의 전선 50m어치를 훔친 죄로 공개처형 됐다고 말했다. 또 같은 날 증인2는 낙원기계연합기업소의 노동자 두 명이 구리선을 훔쳐 판 죄로 공개처형 당했다고 말했다.

증인 2는 2009년과 2010년 신의주에서만 10명 이상이 외화밀반입과 위폐 유통으로 공개처형당했다고 말했다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온 가족의 처형 사례- 증인 10은 고난의 행군 기간 중 식인 행위가 극성을 부렸으며 특히 고아를 포함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식인이 많았다고 말했다.1995년 일가족이 한 남성을 죽이고 인육을 먹은 혐의로 사형됐는데 12세, 9세의 아동까지도 함께 처형됐다고 한다. 증인에 따르면 이것은 식인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함이었으며, 아동들도 사형수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북한 10대원칙

10대 원칙 유일사상체계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은 1967년 김영주에 의해 제안돼, 1974년 김정일에 의해 공식 발표됐다

FIDH – 북한의 사형제도: 전체주의 국가기구 / 33부록1. 10대 원칙 유일사상체계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은 1967년 김영주에 의해 제안돼, 1974년 김정일에 의해 공식 발표됐다: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기 위하여 몸바쳐투쟁하여야 한다.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모셔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4.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여야 한다.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지적통일과 혁명적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따라배워 공산주의풍모와 혁명적사업방법, 인민적사업작풍을 소유하여야 한다.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안겨주신 정치적생명을 귀중히 간직하며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신임과 배려에 높은 정치적자각과 기술로써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9.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유일적령도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규률을 세워야 한다.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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